Cleo Laine
He was Beautiful

 알겠니 ?  싱클레어 !  내 말을 잘 들어 !
 나는 가야만 해.
 하지만 넌 언젠가 다시 내가 필요하게 될 지도 몰라.
 크로머나 그밖의 일로 해서.
 그 때는 네가 나를 불러도
 지금까지처럼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그렇게 와 줄 수는 없어.
 그 때엔 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
 그러면 네 마음 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92년 가을 농활때 부여 초평리 아이들과 정선이와 함께 찍은 사진.
이 아이들은.... 지금쯤 대학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초상(肖像)을....

        초상(初喪)이라고 생각했을까 ?







졸업한 지 불과 3년도 되지 않았지만....

대학 시절을 다시 뒤돌아 본다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많을 것 같다.

시간을 다시 되돌이킬 수만 있다면......

......하는 헛된 꿈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는 것도....

사람들의 짧은 生에......

아쉬움과 후회가 참 많기 때문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찾아 보면..... 정말 즐겁고 기쁜 일들도 많았을텐데.......

왜...... 난 자꾸만 슬프고 가슴 아팠던 과거 속에서만 헤매고 있는 건지......

..................






사랑하는 내 친구 김정선을.......

언제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으로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처음 같이 술 잔을 기울인 것이 언제, 어디서 였는지...

전혀 기억을 할 수가 없다.

.......혹시 녀석은 기억하고 있었을까 ?

그래.... 정선이라면 기억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자신이 만난 모든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내가 정선이를 떠올릴 수 있는 첫 기억은.....

92년 5월 말 학생회관 3층 분식코너에서 였다.

그때는 이미 정선이와 꽤 친해져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한양대에서 열리는 제6기 전대협 출범식에 대해 얘기했다.

내가.... 정선이에게 물었다.

> " 전대협 출범식 갈거야 ?  난 혼자라도 가려고 하는데... "

> " 그래 ?  잘 됐다.  난 공대 사람들이랑 가려고 했는데... "



정선이는 당시 공대학생회 선전부에서 활동하면서....

학내 또는 학외의 행사, 집회 등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운동권 학생으로서의 시작을 차근차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공산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데모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워낙 숫기가 없고 말이 없는 편이어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혼자 조용히 집회에 참여했다가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정선이는 달랐다.

정선이는 언제 어느 자리에 있어도....

사람들과 친해지는, 분위기에 금방 익숙해지는 그런 녀석이었다.

사실...... 정선이는 운동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을 뿐.

그렇게 나하고는 틀린 녀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붙어 다녔었다.

강의실, 도서관, 술집, 학생회실, 데모.........

기껏해야..... 우리의 대학생활 모든 course가 그것 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그 공간 속에서 언제나 함께 였다.

서로 성격도 가치관도 많이 틀렸는데........

우린 어떻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






그 해 여름.........

난 중앙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92 범민족대회에 사수조로 들어가 있었다.

행사 장소를 지키기 위해.....

행사 며칠 전부터 미리 중앙대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난 새벽에 후문을 지키는 조에 포함되어 있었다.

..........새벽 4시였다.

페퍼포그와 백골단이 학교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



화염병과 쇠파이프로는 도저히 그들을 막을 수 없었고......

우리는 학교 전체를 빼앗겨야 했다.

많은 학생들이 연행되었지만......

난 다행히도........ 공대 옥상으로 피할 수 있었고....

전국에서 모인 약 20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두 공대 옥상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결국 범민족대회 장소는 중앙대에서 서울대로 바뀌었다.



중대에 갇혀 있던 3일째 날......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담을 넘어 중앙대를 빠져 나갔다.

다행히도..... 검문에 걸리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서울대 역시... 이미 원천봉쇄가 되어 있었기에.....

난.......... 관악산을 넘어 서울대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선이를 만났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평소에는 무서워서..... 집회때도 항상 뒤에 있었던 정선이였는데.....

마스크를 하고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공대학생회장 수현형이 내게 말했다.

> " 너 갇혀 있다는 얘기 듣자마자,
>   정선이가 제일 먼저 달려오던 걸. "

 

 



92년 가을..... 농활을 마치고 부여군청 앞에서 찍었던 사진.
앞 줄 제일 왼쪽이 정선, 가운데가 나.

 

 

가을.............

새학기가 시작된 후 정선이와 나는 소개팅을 나갔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미팅을 두 번 했었지만 정선이에겐 처음이었다.

말숙이와 진명이.

우리는 보통 4명이 함께 만났었는데......

만남의 분위기는 언제나 정선이에 의해 달려 있었다.

정선이가 말숙이와 따로 만난 적이 있었는지는.....

지금에 와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선이가 말숙이 때문에 많이 고민했었던 것이 생각난다.

녀석은 순진했으니까........



정선이와 말숙이가 만나지 않게 된 이후로도.....

난 진명이와 자주 만났었지만.....

진명이도 정선이 얘길 자주 했었다.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도 질투가 났었던 건지.........

바보같이.........

 

 



92년 12월 30일 공대학생회 송년회 때 정선이가 내 롤링 페이퍼에 썼던 글.

 

 

 

2학년이 되면서......

나는 후배들을 운동권으로 만들기(?) 위한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지만.....

정선이는 언제나 과 생활에 충실했다.

93학번 후배들에게 가장 친한 선배는 분명히 정선이었다.

정선이는 언제나 사람들 속에서, 술자리 속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는 녀석이었다.

다른 사람의 일을 얼마나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 주었는지....

다른 사람의 말을 얼마나 진지하게 들어 주었는지....

나는 여전히 잘 기억하고 있다.

선배들도..... 후배들도..... 누구나 정선이를 좋아했다.






정선이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입대를 했다.

갑작스런 정선이의 군입대 이유를 확실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분명 집안 환경, 돈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선이가 입대해 버리고 난 후 겨울......

난 94년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더 이상 학생들은.... 운동권 학생회장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난...... 다시.... 마르크스(Karl Marx) 읽기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동아리(탈패)에 가입했다.

만약 정선이가 입대하지 않고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쨌든 탈패에 가입해서....

정선이만큼 잊지 못할 친구들(모두 선배들이지만)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 거기서부터일 것이다.

내 대학생활에서의 환경이 정선이와 많이 달라진 것은.






잊고 싶은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정선이는.

입대 후..... 휴가를 나와도 학교에는 들리지 않았었다.

94년 3월쯤이었을까 ?

난 이미 군입대를 결정해 놓고 휴학한 상태였다.

지금은 없어져 버렸지만......

예전엔..... 학교 앞에 '자유노조'라는 지하 호프집이 있었다.

휴가 나온 정선이를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는 이름이 바뀐 '자유시간' 호프집에서 였다.

정선이의 한 마디, 그리고 그 순간의 표정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 " 너... 군대 안 가겠다고 그랬었잖아 ? "


그 어둠침침한 지하호프집에서 그때의 정선이는.....

내가 알던... 1,2학년 때의 생기발랄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때의 정선이 표정이 기억나는 것은....

그 때문이구나..... 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정선이가 입대했을 땐......

면회는 커녕 편지 한 통 부치지 않았었는데.....

(그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막상 내가 군대에 들어가고 나니.... 정선이 생각이 많이 났다.

그래서.... 훈련소에 있을 때.... 정선이에게 편지를 보냈고......

정선이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것이...... 내가 정선이에게서 받은 유일한 편지 한 통이었다.

 

 



정선이가 내게 보낸 유일한 편지.
정선이는 내 아호(雅號) '미림(美林)'을 기억해 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난 96년 여름....... 제대했다.

그해 여름은 비가 많이 와서........

내가 제대할 땐... 철원에 있던 나의 부대 막사, 탄약고 등이 떠내려가서....

후임병들이 많이 작업하게 될 것을 걱정했었다.

제대하자 마자 연대 사태가 있었고, 많은 학생들이 잡혀 갔다.

정선이는 2학년 1학기에 복학했다가 적응하기가 힘들었는지 다시 휴학했다.

그리고...... 나는 93학번 후배 현주에 대한 짝사랑에 빠졌다.






............

이제.... 내가 학교에 가게 된다면......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무슨 증명서를 발부 받기 위해서거나...

동기들 모임, 또는 학생회 모임이 갖는 체육대회 같은 것이겠지만.....

그저 내 추억에만 발맞추어 가게 된다면.....

제일 먼저 들릴 곳은.....

학교 앞 술집 골목('개골목'이라고 불리는)......

그 중에서도 '할머니집'이란 선술집부터 들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도 재작년에 돌아가시고 지금은 주인이 바뀌었다.)



그즈음.... 난 현주에 대한 짝사랑으로 가슴이 많이 아팠던 것 같고....

할머니집에서.... 정선이는 나의 얘기를 차근차근 잘 들어주었다.

그런 일.... 정선이는 참 잘 했으니까.....

누군가의 얘기를 자신의 얘기처럼 잘 들어주는 일.

그리고.... 따뜻하게 위로하기 보다는....

큰소리로 웃으며 등을 때리면서.... 뭐 그런 일 땜에 그러냐고...

내가 다 해결해 주마..... 라는 식이었던 정선이.

녀석은 다른 이의 아픔을 진정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왜 난 정선이를 조금이라도 닮지 못한 걸까 ?!

 

 



92년 7월.... 서남총련 통일축전이 열린 숭실대에 가서 찍었던 사진.
가운데가 정선이, 기타를 들고 있는 것이 나.

 

 

 

 크눌프는 잠시 생각한 후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다.
 " 그러나 그것은 모두 제가 아직 젊었던 옛날의 일입니다.
   왜 저는 그 모든 것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또한 옳은 사람이 못되었을까요?
   그 후에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요. "
                                                        (헤르만 헤세 '크눌프, 그 삶의 세 이야기'중에서) 
                 
 

 

97년...........

난 3학년 1학기에 복학했지만 정선이는 2학년으로 다운 복학했다.

학년이 달라지면서 정선이와 다시 붙어 다닐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다.

나의 학교 생활 공간은 이미 탈패가 되어 있었고....

정선이는 더 이상 공대학생회나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내겐 동아리의 선배들이 정선이의 역할을 해 주었고.....

정선이에겐.... 93학번들과 다운 복학한 92학번들이 내 역할을 해 주었다.

난 정선이를 믿었고.....

정선이는 나를 믿었던 것 같다.

우린 예전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다니진 않았지만.....

언제나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다.






98년............

정선이는 3학년이 되면서.... 과학생회장을 했다.

난 4학년이 되었고..... 그래서인지......

학생회 일로 정선이와 가끔 싸웠던 걸 기억한다.

이미 정선이는 운동에 대한 관심을 버린 지 오래 였는데.....

어리석게도..... 난 여전히........

집회에 발벗고 나서는 학생회장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99년............

난 졸업을 했고.... 정선이는 4학년이 되었다.

졸업식 날에 난 과 술자리엔 가지 않았다.

학교 앞 개골목에서......

동아리 졸업생 술자리 모임과......

공대학생회 졸업생 술자리 모임만.... 왔다갔다 하면서 술을 마셨고....

그래서... 막상 졸업식 땐... 정선이는 보지도 못했고......

그 흔한 사진조차 같이 한 장 찍지 못했다.



정선이와 마지막으로 둘이서만 술을 먹은 것이 언제였을까 ?

분명.... 98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99년 초였을지도 모르겠다.)

졸업하기 전... 그러니까 겨울방학때 였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물론..... 학교 앞 개골목 '할머니집'에서 였다.

그게 단 둘이 마신 마지막 술자리였을 것이다.

아니... 그 이후로... 같이 술을 먹은 적이.......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안떠오르는 것으로 봐서는..... 없는 것 같다.

그게 정선이와의 마지막 술자리였구나 !






내가 정선이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99년 7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난 선배들과 인터넷 사이트 하나를 운영하면서.........

낮엔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정선이가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지난 밤.... 술을 마시다가 술집 간판을 부셨다고 했다.

................

뭐가 그리 힘들었기에....



정선이는 돈을 빌리러 PC방으로 찾아 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7월초였던 모양이다.

내가 월급으로 받은 돈을 현금으로 갖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PC방에서 내가 탄 커피에 얼음을 넣어 마셨고....

우리는.... 아마도 서로 담배를 2개피 쯤 피었을 것이다.

정선이는 핸드폰을 구입했다고 했고, 난 전화번호를 그때서야 적었을 것이다.

내가 왜 취업을 안하고 있는지 정선이가 걱정해 주었던 것 같고...

정선이 자신의 취업 문제를 얘기했던 것 같다.

정선인 4학년이었으니까.......



정선인 PC방에서 바라다 보이는 육교를 건너 사라졌다.

.............

그것이 내가 본........ 정선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내가 정선이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곳.... 미아삼거리의 육교 위.
생 떽쥐베리가 어린왕자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곳만큼이나 내겐 소중한 공간이다.






재작년 9월초에 이메일이 하나 날라왔다.

93학번 후배 용신이에게서 였다.

> " 형, 저 복학했어요.  언제 학교 한 번 와서 술 사주세요. "


그래서 학교에 가서....

오래간만에 정선이와 용신이를 만나서.......

술 한 잔 멋지게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정선이, 용신이와 함께 라면..... 참 많은 얘기들로.......

우리의 젊은 날, 술자리의 시간을 멈춰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정선이에게 전화를 해서......

월요일쯤에 용신이랑 같이 만나서 술 한 잔 하자....라고 말했다.

정선이는 금요일에 오라고 했다.

그때쯤 돈이 생기니까 돈도 갚을 겸 금요일에 오라고 했다.

그래서 금요일에 학교 앞 개골목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정선이는 삼성에 특채 면접가게 되었다고 좋아했던 것이 기억난다.

어쩐지 전화받는 녀석의 목소리가 참 좋아 보였다.

예전의 1학년때 처럼.

정선이의 약간은 들떴던 2년 전의 그 목소리가........

정선이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 주 수요일쯤에 용신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 " 형 왜 안와요 ? "


정선이는 내가 수요일에 온다고 그랬던 모양이었다.

난 원래 금요일에 약속이 잡혀 있었으니까.....

> " 금요일에 갈테니까 정선이랑 너랑 같이 보자. "

..... 라고 했다.


금요일에 오라고 한 건 정선이였는데.... 녀석이 수요일로 착각하다니...






정선이, 용신이와 만나기로 한 1999년 10월 1일 금요일......

일어나서 아침 신문을 보고 있을 때였다.

신문을 보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때 신문에... 마르크스의 얼굴이 실린 광고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을 보고 기분이 상해 있었을 때........

웬만해서 잘 울지 않던 내 PCS가 멜로디를 울리고 있었다.



용신이였다.

만나기로 한 날이니까.....

언제 올거냐고 물으려고 전화했으리라 생각했다.

용신이가 말했다.

>
" 정선이형이 어젯밤 죽었데요.... "


................






그래, 난 그렇게 생각했었다.

정선이 녀석이 어젯밤에도 술 마시고 나서는....

어딘가 뻗어 자고 있는 모양이군.

그래서 오늘 정선이 녀석은 못나올 것 같다고......

용신이는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 술을 마시면..........

취해 쓰러져 잠들 때까지 마시던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래서.... 용신이에게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

용신이도 워낙 장난끼가 많은 후배였으니까.........

.................



혹시나 해서 과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사랑하는 내 친구 김정선은.........

정확히..... 2년전 오늘...... 1999년 9월 30일 목요일 밤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






난 92학번 과 동기 재진이와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있었다.

둘 다 양복을 입었고, 우산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사업 얘기를 했다.

재진이는 정선이의 얘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예전 얘기를 했다.

재진이 와 나, 정선이는 셋이 참 많이도 어울려 다녔었는데.....

그 기억들은.........

정선이의 죽음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서울 쌍문동의 한일병원 영안실에는.......

정선이를 위해 참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92학번들은 거의 다 왔고.......

93학번에서 시작해서.... 한참 밑의 과 후배들도 많이 온 것 같았다.

과조교로 있는 여후배는 눈물을 많이 흘리고 있었고......

1,2학년시절 정선이와 참 많이도 친했던 과 동기들은....

영안실 밖에서 담배 한 개피에 추억을 실어.....

눈물로 정선이의 영혼을 배웅해 주고 있었다.

정선이와 같이 수요일에 술을 마신 친구들이 내게 얘기했다.

왜 수요일에 오지 않았느냐고.

.............






그리고 한 친구가 말했다.

단상 위에 놓인 정선이 사진이 너무 밝다고.

.........................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익숙한 일인듯 바뀐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명함을 서로에게 돌렸다.

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떠올렸다.

공대학생회 선후배들도 많이 왔지만......

난 그들과 많은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밤을 새는 동안....

우리는..... 정선이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상한 일이었다.

TV 드라마의 흔한...... 슬픈 사랑 얘기에도.....

금새 눈물이 나던 나였는데....

가장 친했던, 사랑했던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정선이가 죽으면서......

우리가 나누었던 얘기들도, 약속들도, 기억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고....

언제든 만나고 싶을 때 만나서.....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고민을 들어줄, 그리고 풀어줄...... 나의 데미안도 죽어 버렸는데.....

내겐.....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어쩌면..... 내겐 여전히....

정선이의 죽음이 믿기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혼자서 쓸쓸함을 달래며 영안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두운 나무들 사이에서........

난 정선이가 저 앞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선이에게 얘기했다.

> ' 넌 축복 받은 거 같다.
>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네 죽음을 애도하고 있잖아.
>   네 27년의 삶은 저 많은 사람들만큼 아름다웠던 거야. '



.............






난 우울해졌고..... 그래서 내 PCS의 폴더를 열었다.

인삿말로 녹음해 두었던....

영화 '나자리노(the Love of Wolf)'의.......

마지막 장면 대사와 배경음악이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음악을 들으면.... 슬픔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했다.

한없이 슬프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미처 몰랐던.... 신규 메세지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누구일까..... 난 음성 메세지를 들었다.

> " 어.. 나 정선인데.. 나한테 빨리 연락 좀 줘.
>   알았지 ?  지금 바로, 듣자마자, 알았지 ?  나.. 정선이야... "



그건 정선이의 목소리였다.

PCS에 메세지 표시가 없었고......

그래서 난 그때까지 정선이의 메세지가 온 줄 모르고 있었다.

정선이가 수요일에 남긴 메세지였던 것이다.



정선이의 마지막 목소리가...... 내 PCS 안에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늦게서야 정선이의 메시지를 들었어도........

이제 난..... 어떤 방법으로도 정선이에게 연락할 수가 없으니까.






화장터로 옮겨진 정선이의 몸이........

...................

한 줌의 재로 변하기까지는......

아주 짧은 시간만이 걸렸을........ 뿐이었다.

..................



그날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







정선이가 죽은 2주일쯤 후...... 학교 앞 술집 '할머니집'에서 일기장에 썼던 글.






내가 정선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 일기장의 어느 공간에.....

그리고 내 홈페이지의 어느 한 공간에......

정선이에 대한 기억을 남겨 두는.......

그저 그런 것들 뿐이지만.......

그것만큼이라도 내겐 너무나 소중한 일이 될 것이다.






겨우...... 겨우 27년...... 아주 짧은 生이었지만......

그래도 정선이는..... 그를 알았던 모든 이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어 주고 떠났다.

그리고 내겐..... 한없이 믿을 수 있는 친구의 마음을.....

아름다웠던 데미안의 기억을.... 남겨 주었다.

나도..... 사람들에게.... 정선이처럼......

아름다움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정선이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기억들 중에 어떤 것들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정선이와 다시 얘기를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잘못된 기억들이 제대로 고쳐질 수도 있을텐데.

술 한 잔 하면서 얘기 나눌 수만 있다면......

정선이와 있었던 어떤 사건들, 그리고 있었을지 모를 어떤 오해들도....

뭔가 다른 것이 있었음을......

진짜 마음은 그것이 아니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언제나 항상..... 대화가 부족해서....

쉽게 판단해 버리고, 쉽게 내 생각으로 끼어 맞춰 버리는 잘못....

앞으론 그런 기억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선이에게서.... 그런 것도 배운 것 같으니까.






가을이 오면.......

몇 년 전만해도..... 언제나 내 외사랑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렸었는데.....

이젠 정선이 생각이 많이 난다.

특히.... 살아가는 일들이 무척이나 힘들게 느껴질 때면........

자꾸만 나의 데미안을 떠올려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덧말 :  데미안의 마지막 말처럼..... 앞으론 내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께.
 네 덕분에....... 난 소중한, 그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아.
 정말 고맙구, 잘 지내길 바래.
 언제나....... 널 잊지 않을께.
 사랑하는 내 친구 김정선, 나중에 다시 만나자...... 꼭........

 

 

He Was Beautiful




He was beautiful, beautiful to my eyes
from the moment I saw him, sun fill the skies

He was so so beautiful, beautiful just to held
in my dreams he was spring time, winter was cold

How could I tell him what I so clearly could see
though I longed for him another trust
in me completely so I never could be filled


I thought it was beautiful, knowing now That he can't.
I will always remember times that we shared

Now it's all over still the feeling's linger on
for my dream keep returning
Now that he's gone
Oh it was beautiful, beautiful, beautiful to be love

 








[가시나무를 타고 넘어 별들에게로........]








번째 오신 분은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



혹시..... '민투패밀리'를 찾는다면 미안.
하지만.... 곧 다시 만날 날이 있을거야, 틀림없이.
영원히 이별한다면..... 그건 너무 슬프니까.



[20011001 정선이가 떠나고 2년 되는 날] CopyLeft@2001 Produced by Mintu & Jinkwon Park (marx@samsung.co.kr)